한계원리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
한계원리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
조영관에 따르면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한계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한계적(marginal)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편익(한계이득)과 비용(한계비용)의 크기를 비교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선택의 한계이득이 한계비용보다 큰 경우에만 선택을 할 것이다.
한계(marginal)는 간단히 말해 어떠한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계적 변화는 한 단위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시험공부를 한 시간 더 하거나 상품을 한 개 더 생산하는 것 등이 한계적 변화인 것이다.
◈한계편익(marginal benefit)
한계적 변화로 얻게 되는 편익은 한계편익(marginal benefit)이라 하고,발생하는 비용은 한계비용(marginal cost)이라고 한다. 한계원리(marginal principle)는 추가적 활동에 따른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을 따졌을 때,한계편익이 한계비용보다 크면 그 활동을 계속하라는 것을 뜻한다. 공원 바이킹에서 한 번 더 태워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에게 공짜로 한 번 더 태워주는 사례를 기업의 생산에 적용하면 기업은 한계수입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는 이상 계속 생산을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대개 많은 경우 어떠한 상황 속에서 선택하게 된다. 이때 현재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변화를 한계적 변화(marginal changes)라고 한다. 이러한 한계적 변화는 상황의 마지막에서 이루어지며 그때의 변화로 인한 편익과 비용을 고려하여 편익이 더욱 커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때 편익과 비용은 현재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평가된다. 대개 소유량, 소비량 등의 상태에 따라 편익과 비용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적 변화는 오로지 현재 시점만을 고려한 선택이므로 전체적인 경제적 이익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한계(marginal)는
간단히 말해 어떠한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씩’이란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독자들을 위해 추가 설명을 하면,한계적 변화는 한 단위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한계원리(marginal principle)는 추가적 활동에 따른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을 따졌을 때,한계편익이 한계비용보다 크면 그 활동을 계속하라는 것을 뜻한다. 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경제학에서는 왜 한계원리를 강조할까?
한계원리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미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어떠한 경계(margin)에서 눈앞에 직면한 문제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어떤 활동의 한계편익이 한계비용을 초과한다면 그 활동을 계속해야 하며,한계비용이 한계편익을 초과하면 그 활동은 중단돼야 한다. 이것이 한계원리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이다.
경제학에서의 한계적 의사결정에 대한 고전적 예는 다음과 같다.
여객선 타이타닉이 대서양을 한번 횡단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약 20만 파운드이고,총비용을 수용 가능 승객수로 나눈 평균비용이 60파운드라고 가정해보자. 타이타닉이 객실을 몇 개 비운 채로 출항을 할 상황에 처했는데,가난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최대 10파운드를 내고 타이타닉에 탑승할 용의가 있다면 타이타닉 호는 디카프리오를 탑승시켜야 할까?
평균비용이 60파운드이기 때문에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객실을 비워둔 채 출항하는 것보다는 10파운드를 받고 디카프리오를 탑승시키는 것이 타이타닉에는 이득이다. 승객 한 명을 더 탑승시키기 위해 객실을 늘려야 하는 상황도 아니므로 추가적 비용은 식사 제공 비용 정도밖에 없다. 한계수입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므로 그를 탑승시키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이것을 기업의 생산에 적용하면 기업은 한계수입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는 이상 계속 생산을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지혜로운 의사결정
중국의 춘추전국 시절 노나라에 복부제라는 분이 있었다. 복부제가 선부라는 마을의 원님으로 있을 때 이웃 제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왔다. 복부제는 즉시 성문을 닫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때마침 추수기여서 성문 밖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있었다. 곡식을 아깝게 생각한 백성들은 원님을 찾아가서 “곡식을 적병들에게 넘겨줄 바에야 적이 도착하기 전에 모두 나가서 아무 밭에서나 자기 힘대로 걷어 가게 하는 것이 좋겠소.” 라고 했다. 복부제는 그들의 청을 뿌리치고 성문을 닫게 했다. 복부제를 존경하던 백성들은 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복부제는 적을 이롭게 했다는 죄목으로 왕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복부제는 “일년 지은 곡식을 적병들에게 빼앗긴 것은 아깝기 짝이 없는 일이오나 급하고 손쉽다고 해서 남의 곡식을 마구 베어다 먹는 버릇이 생기면 그것은 10년이 가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라고 했다. 복부제의 말을 들은 왕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그의 식견에 탄복했다.
죄의 버릇도 마찬가지이다. 그까짓 정도야 하는 소홀한 마음이 결국 큰 일을 저지르는 결과가 된다. 한 작은 돌을 빼내어 큰 담이 무너지듯 작은 법을 지키지 않아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술통령"으로 희화화된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요직들은 다 검사들로 체용하고 있다. 요리사가 서야 할 자리에 택시 기사로 자리를 체우는 것과 같은 우둔한 짓이다. 인재를 볼 줄 모르고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 오직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어리석음이 드러나 천심이라는 민심이 그를 버리고 있다. 인사 탕평책을 쓰지 않고 그가 계속 자기에게 딸랑딸랑하는 자들만 간택하는 드라이브를 걸면 결국 국민들은 그를 버릴 것이다.